[독립출판사 이야기]나의 출판사 독립출판사 이야기

어릴 적부터 난 좀 특이한 아이였다.

아이들하고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특히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라는 것은 도무지 할 줄을 모르는 아이였다. 너무 수줍음이 많아서였을 수도 있고,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는 기질을 천성적으로 타고 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어릴 적 어떤 잘못이었는지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절대 잘못했다고 먼저 말을 하지 않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만 푹 숙이고 부모님의 꾸지람을 듣고만 있었다. 어머니는 생물아, 잘못했니, 안했니?”라고 채근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물론 내가 잘못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말을 내뱉는다는 것이 정말 너무나도 어려웠던 것 같다. 그렇기에,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단순히 끝났을 것을 어머니의 화를 머리끝까지 돋아 매질을 당하고, 진을 쏙 빼놓은 다음에서야 얼버무리며 작은 목소리로 ......합니다.’라는 참 쉽기도 한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을 정도다. 머리회전이 빠르고 여우같은 우리 형은 개구지고 까불까불하여 부모님에게 혼도 많이 났지만, 잘못했다는 인정, 그 인정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라 부모님의 화를 돋아 일을 키우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맞기도 전에 벌써 그렁그렁한 눈물과 함께 손발이 진짜 없어지도록 빌곤 했다. 나와 달리 순수한 아이 같아 보였다. 당시의 나는 그런 종류의 뭔가는 결여된 아이였을까.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면 형도, 그리고 나도 그 당시 모두 다 순수한 아이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단지, 나의 경우 동일한 마음을 표현해 본 경험이 없어서 또는 천성적 기질 때문에 그 당연한 아이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았던 것뿐이다.

 

출판사 얘기를 하려다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두서없이 꺼낸 이유는 이렇다. 우리 출판사의 책들도 표현될 수 없었던 아이의 순수함 또는 그 어떤 것 마냥, 그 주제의 특성상 소외되거나 또는 환경적 요인으로 접할 길이 없어, 그 속에 담긴 보물 같은 이야기가 있음에도, 세상에 내놓지 못한, 사라졌을 수도 있는 주제들을 담고 싶어서다. 또한 그 책을 찾는 독자들에게도 주류 문화권에서 다뤄질 수 없는 소재들에 대해 다양한 판단의 근거를 주어 더 넓은 세계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뜻밖의 발견에서 오는 기쁨과, 그것이 전하는 울림의 힘은 더 강력한 것일지도 모른다. 책은 사람으로부터 나왔기에, 한 권의 책은 사람이고 인격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소외되거나 관심 없는 것들도 그 속에 있는 정수는 현재 주목받고 있는 그것에 비해 그 가치가 덜하지 않는다, 사람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이런 보석 같은 책들을 찾아 출간함으로써 그 반전에서 오는 기쁨으로 각박한 세상의 삶을 위로해주고 살아갈 애착을 주는 출판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런 글들을 찾고 있다. 찾은 그 글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 출판사를 하고자 한다.


독립출판사 그거 한 번 해볼랍니다. 독립출판사 이야기

대학 졸업 후 인턴 10개월, 기계화학분야 11개월, 국제개발협력분야 16개월, 반도체분야 3개월, 의료기기분야 25개월.

어디보자 도합 5년하고 11개월 동안 회사에서 뒹굴렀다.

이것이 나의 사회생활에 대한 이력이며, 회사생활의 낙오자로도 도망자로도 불리기에 부족함 없는 성적일게다.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많이도 옮겨 다녔으며, 이젠 회사생활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마음을 고쳐 먹으려 해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회사생활에 대한 철저한 적대감과 반감만이 있을 뿐이다.

총체적으로 노답이다. 나도, 그리고 회사라고 불리는 것도.

 

주변 동료들의 시선에선 겉으로 보이기에 딱히 유별나게 모난 구석은 없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그러기를 바란다).

어쩌면 평범하고, 은연 중 엿보이는 특이한 구석이 있는 친구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현세에서의 인연은 마지막이었을 수도 있는 이전 동료들에게,

마지막까지 책임감 있는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내 안의 욕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면 누가 창조한지 알 수 없는 사회생활의 미덕이라는 미명을 쫒은 것인가,

인수인계 마지막 날까지 부단히도 애쓰는 내 모습이 생각나 한편으로 어리석고 우습기까지 하다.

떠난 자리에 들려오는 것은 아마도 완벽히 처리할 수 없는 일개 사원의 부적절한 업무처리 능력과 

그에 따라 따라오는 '역시 이렇다니까!'라는 소식일지 모른다.

 

최선을 다해 일했다. 보는 시각과 주체에 따라 중요한 일일수도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수도 있지만

혼자 똥줄 타며, 비지땀 흘리며, 여기로 뛰어갔다 저기로 뛰어갔다 하며 최선을 다했다.

거기에 쏟은 노력과 땀은 대게 아무도 모르며, 기억을 바라는 것은 사치이다.

대게의 동료들은 오히려 자신에게 그 업무가 떠넘겨지지 않음을 기원하며 '생물 씨 화이팅'하며 응원해 준다.

물론 큰 힘은 안났지만, 신경써줌에 대해 감사히 생각했다.

이런 내가 되게 찌질하게 보여지지만, 각자의 입장차가 있음을 모르지는 않는다.

 

이런 회사 생활에서 나 자신도, 인간 또는 사람도, 조직도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혼자서 이런 망상이나 하고 있으니 회사생활을 지속하기에 힘든 팔자를 타고 났을지도 모른다.

 

회사가 싫어 차라리 나만의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것도 요즘 사양산업이라 불리는, 경험도, 어떤 연관성도, 지인도 전~~혀 없는 이 출판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니

이 선택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공간에 나의 독립출판사 설립에 대한 도전을 얘기 해보려고 한다.

성공을 바라면서 시작하지 않으니 참 망하기 딱 좋은 소박한 야망일지 모르지만,

나는 꾸준히 내가 사랑하는 것을 단순히 '하고 싶을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는 것처럼.

그리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기를 바라면서.

 

. 빈약한 퇴직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변의 걱정과 우려, 어떻게 형용하기 힘든 그 시선이 나를 움츠러들게 하지만

잘난 것 하난 없는 이 몸뚱이 하나 믿고 독립출판사 그거 한 번 해 볼랍니다.


회사생활의 무언가에 그리도 염증을 느꼈냐고 물으신다면,

퇴직 후 무엇가 대단한 것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어서 직감적으로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하기 싫은 것을 그저 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아이디어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력하다. 독서일기

경제학자들과 정치 철학자들의 사상은 그것이 옳을 때나 그를 때나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사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들의 사상이다

어떤 지적 영향에서도 완전히 빗겨나 있다고 생각하는 실용적인 인간도 

실제로는 이미 세상을 떠난 경제학자의 노예인 경우가 많다


권력에 미친 사람들, 즉 그것이 자신의 타고나 소명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이미 우리의 기억에서 자취를 감춘 하잘 것 없는 경제학자들과 정치 철학자들에게서 

자신들의 광기를 도출해낸다. (...) 

그러나 조만간,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위험한 것은 기득권이 아니라 이런 사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케인즈, pp 383-384>


이델올로기는 사람의 정신을, 그것을 탐닉하는 사람이 처음 예상했었을 것보다 그 이상으로, 

자신을 사로잡아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것이 때로는 좋은 방향일 수도, 나쁜 방향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겐 마치 종교이며,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써 개인의 생각을 제한하며 통제한다.


18세기 말 탄생한 자본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상인 자본주의는

점점 수정, 반발, 진화, 발달, 변이 등을 거치면서 현재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현대인의 삶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우리는 그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간과하기 일쑤이다.


개인적으로 이과와 공대에 진학하여, 보통 사회, 역사 등 상식적인 부분이 문과생들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생각한다.

(아 문과생과 대화하다보면 항상 작아지는 나를 보게 된다. ㅠ)

그렇기에 성인이 되어 경제사의 기본적 사상에 대해 가물가물하여 새삼 다시 찾아본다거나,

중고교 시절 얼핏 들었던 인물들의 이름을 책이나 영상에서 만나게 되면 

'아 이거 언제 한 번 들어본 거 같은데'하며 작은 것에도 괜히 뿌듯해 한다.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있고, 어떤 사회의 단편만 보고 판단했을지도 모르지만,

어릴 적 자본주의는 오로지 사회의 약자를 수탈하고, 부정부패를 야기하고, 

괴물과도 같은 소비문화를 조장, 각종 빈부격차, 양극화 등 수없이 많은 문제와 직접적 연관이 있기에

자본주의라는 단어에 굉장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어쨋든 나쁜 거, 사회주의는 아쉽게 실패하였으며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수정된다면

인간의 삶이 진정 인간다워진다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내가 어릴 때 더 깊이 있게 접하지 못했고,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지 못해

그 오해는 점점 더 커진 것 같다.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이런 나의 오해를 어느정도 감소시켰으며,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동시에, 가장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애덤스미스의 사상과 굵직한 경제학자의 이론에 

대해 다소 명쾌히 파악할 수 있었고, 경제학의 흐름에 대한 개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경제학자는 사상가, 철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 무엇이로든 표현할 수 있고,

인간과 사회, 그리고 그것의 과거,현재, 미래가 크게는 자본을 통해 어떻게 행동하고 통제될 수 있는지를

경제학자의 눈을 통해 체계화된 것이 바로 경제학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애덤 스미스를 포함하여 경제사의 자신의 이름을 굵직히 새긴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인간에 대한 진실어린 애정과 동정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생각과 사상이 이 세계를 더 낫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신자유주의가 새롭게 대두되면서,

'돈'이 마치 신으로 인식되며, 

그것은 사람, 문화, 환경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 뿌리깊게 연관되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제학은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올바른 분별력과 함께 다뤄지고,

사상을 위한 사상 또는 인류애 없는 정책이 아닌, 

진심어린 애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참 재미있는 일화와 유머로 딱딱한 경제사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2009년 발간된 개정판으로 읽었는데 오타가 많아 흐름이 끊기는 감이 있어 아쉬었다.

또한, 어렵고 듣보잡 류의 많은 경제학자 -물론 나한테만 그렇겠지만-가 끊임없이 나와 

지루한 면도 없지않아 있었다.

좀 더 깊이 있는 책을 섭렵하고 다시 읽는다면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질 것 같다.


끝으로 인상깊었던 책의 마지막 구절로 감상을 마치려 한다.


인류의 기나긴 역사에서 볼 때, 지금 두 발로 걷는 인류가 네 발로 걸었을 때보다 

더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두 발로 걷고 있는 지금이 네발로 걸었을 때보다 분명히 나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 우리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고자 애썼고 애쓰고 있는 경제학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의 마음올 신뢰를 보내도록 하자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pp.559>


인간의 무서움은 그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고, 자신의 과거를 반추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수많은 문제가 존재할 지라도 

인간은 이 또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잠시나마 기도해 본다.


노가다 체험 일상일기

이게 부끄러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20대 때에 노가다를 뛰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 인생의 큰 아쉬움 중 하나였다.
박카스 광고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열심히 삶을 산다는 이미지로서 이 '노가다'라는 것이 각인된 것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그래서 주말을 이용해 요 노가다를 한 번 다녀왔다 말이지.
인력사무소에서 팀을 짜줘 5명의 동료분들이랑 현장에 출동(?)했는데,
5명 모두 조선족 또는 중국분들이었음에 '정말 외국분들이 많구나'하고 참 놀랬다.

한국말을 전혀 할 수 없는 중국분 한명이 현장에 들어가면 물을 전혀 마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나를 포함해 6명 모두의 물을 개인 사비로 사주셨다.
웃는 얼굴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ㅜ
개인적으로 나는 이렇게 순수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선의를 베푸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인간이라 그 모습이 참 좋았다.
선의를 베풀 때 왠지 부끄러워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 보여지어
오히려 받는 분도 멋쩍게 머리를 긁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아직도 그 중국분의 웃는 모습이 떠올릴 수 있다. 다시 한 번 감사 ㅠ

인력사무소에 모이신 분들 중에서도 나는 가장 어린 축에 속해 있었다.
모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인데 젊은 나도 힘든 일들을 능숙히 하시는 모습에 뭔가 뜨거운 것을 느낄 수  ...
아무 이런 감정도 익숙해지면 무뎌질수도 있겠지만
내가 모르는 삶의 여러 모습이 있을 수 있게구나라는 생각이든다.
그래서 많이 경험을 하고 삶의 여러 모습 -그게 단편적인 모습일 지라도 -을 되도록 많이 체험하는 것이
사고와 다양한 입장에 대한 폭을 넓힌다고 생각한다.

토요일 중 시간이 날 때 또 한 번 방문할 계획이다.
휴직 후 오랜만에 돈도 벌고 기분이 좋았다.
현장에 시멘트와 먼지가 오지게 덮혀 있다는 점이 아쉽다.
아 그리고 간식 시간에 먹는 콩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그 집 정말 잘하더라.



신세기 에반게리온, 안노 히데야키 영화일기

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들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나의 절대적 지론은 아니지만,
특정 매니아층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면 그 배경과 이유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나의 중고교 시절부터 워낙 유명하여 풍물으로 들어왔지만
한 번도 찾아보지는 못했다.

드디어 이 나이에 이 작품을 정주행하고, 그 깊이와 재미를 알게 되었는데,
어릴 적 보았더라면 오히려 그 재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이런 류의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아마 이야기의 배치와 은유적 대상들이 풍부한 탓일 것이다.

많은 메타포와 상징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부분과 세계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인간과 사회이다.
다수의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 개인의 느낄 수 밖에 없는
근원적 고독과 외로움, 소외, 이해받지 못함으로부터의 
깨달음과 해방을 통한 성장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에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으로부터의 이해와 인정, 사랑을 통한 행복은 가장 고차원적이며, 근원적인,
그렇기에 어쩌면 간과될 수도 있는 행복의 수준일 것이다. 
그 행복 추구의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실망하지만
묵묵히 나아가면 그 현실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임을 말하고자
감독은 이 대작을 만들어 나갔다.

좋은 작품이란 언제나 시대와 그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들, 확정되지 않는 엔딩을 독자들에게 남겨,
그 작품을 통해 현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준다.
그렇기에 그 속에 배치된 난해함이 더욱 작품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TV판 26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먼저 보게 되었다.
다음 기회에 극장판 서, 파, 큐도 시간이 될 때 찾아봐 
에반게리온의 시각적 즐거움과 이해를 넓히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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